영화 오아시스 감상 후기

영화 오아시스 감상 후기
영화 오아시스 감상 후기

한 남자가 있다. 한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입김을 내뿜다. 그 없는 동안 가족들 이사하다. 그 남자 그의 집을 모른다. 한 여자가 있다. 그 여자 몸이 좀 불편하다. 그 여자 가족들이 그 여자만 두고 이사를 하다. 그 여자 홀로 남아 거울을 가지고 그녀만의 세상에 빠지다. 모두 외톨이가 된 그 남자와 여자 서로 만나다. 그리고 서로 사랑에 빠지다. Oasis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창동 감독(현 문화관광부 장관)은 서로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를 -그의 전 영화들이 그랬듯이- 그렇게 가만히 보여준다. 흔한 게 남녀가 사랑하는 멜로라는데 이창동 감독이 이번에 들고 나온 멜로는 좀 다르게 느껴진다. 그것은 보는 이의 감정을 어떠한 입장으로 만드느냐 하는 방법의 문제에 달린 것 같다. 그 흔한 멜로들이 보는 사람이 주인공의 감정을 따라가게 하고 동화되게 하는 반면 Oasis는 보는 사람이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철저히 브레히트적이다. 감정의 이입을 못하는 대신 보는 이는 그 남자와 여자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그네들이 살고 있는, 또 보는 이 자신이 살고 있는 이 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이창동 감독의 멜로는 한한 그것의 범주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형식을 통해서도 흔한 멜로에서 슬쩍 빠져나오고 있다.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최소한의 기술로 단순히 카메라만을 가지고 씨 퀸스들을 만들어 가면서도 그는 판타지를 하나의 씬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리얼의 씨퀸스와 판타지 씬이 만나는 그 오묘한 혼합, 거울 빛으로 비둘기와 나비를 만들어 세상을 열려하는 공주의 판타지와 공주도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지극히 정상적인-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현실이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있다. 이것은 형식을 조금씩 비틀어 버리면서 우리 사는 사회를 비틀어 비추는 재밌는 설정이다. 이창동 감독은 그렇게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 속에 교묘히 세상의 얼굴을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흔한 멜로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문제제기를 해놓고 그것에 빠지지 말고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기억에 남는 영화 장면들

영화는 철저히 보여주기 형식이다. 아주 그렇게 말을 하고 시작한다.Oasis카펫을 한동안 보여주는 오프닝 씬, 그 카펫은 흔들거리는 알 수 없는 무언가의 그림자에 의해 가리어져 있다. 완전한 형태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마치 철장으로 가려진 어느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애초에 영화는 그렇게 안으로 들어올 수 없게 만들고, 보여주기라는 것을 말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그 카펫 씬은 마치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들을 가만히 설명해 주는 복선 같기도 하다. 춤을 추는 인도 여인은 바로 공주를, 그녀를 사랑하는 한 소년이 따라서 춤을 추는데 이것은 종두를,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코를 들고 있는 아기 코끼리는 그 둘을 Oasis로 데려다 줄 안내자, 바로 사랑 그 자체인 것이다. 중요한 씬인데 그것은 보는 이를 완전히 그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지 않는다. 흔들리는 그림자를 통해서 말이다. 마치 이창동 감독이 "자, 내가 하는 이야기를 보시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이렇게 제안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문제제기와 생각하기, 철학의 가장 기본적인 과정을 이창동 감독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그 철학함은 우리네 삶을 들여다 보고, 가낭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그렇게 그의 전 영화들이 그랬듯이 철저히 보여주기를 시도하면서 열린 구도를 통해 보는 이의 몫을 남겨 놓고는 생활 속의 철학함을 영화 그 자체로 보여주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 꿈과 사람을 이야기해왔다. 그것은 철저히 사회적인 배경에 의한 것이었다. 가족과 함께 작은 식당이나 하나 차리고 살고 싶어 하던 막둥이도, 예쁜 꽃 사진을 찍고 싶어 하던 영호도 모두 거리의 냉정함과 사회의 무관심에 의해 죽음을 선택했다. 감독은 이런 일련의 영화들을 통해서 시대와 세상이 만들어낸 슬픈 우리의 자화상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Oasis를 통해서 이창동 감독은 희망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우울한 사회상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히려 희망이다. 처절히 절망적이기에 더욱 희망에 대한 갈망이 생기는 것이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를 닮아 있는 것도 같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세편 자체가 일련의 어떤 과정과 같기도 하다. 절망을 늘어놓고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그는 희망을 들고 나온 것이다. 뜨거운 사막 가운데서 발견한 Oasis를 보고 느끼는 그 마음처럼 말이다. 이창동 감독의 전 영화 두 편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냉정하고 무심하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살만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감독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Oasis의 라스트 씬. 공주는 방을 청소하며 카메라를 보고 웃음을 비춘다. 방은 여전히 공주 혼자만의 공간으로 채워져 있지만, 공주는 꽤나 행복해 보인다. 종두의 목소리가 진짜 이건, 공주의 상상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발에 날리는 게 수북한 먼지이건, 공주가 상상하는 바지들이건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판타지와 현실은 보기 좋게 혼합되어 있고 그렇게 마음대로 넘나들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동주는 확인했고, 보는 이도 그것 하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Oasis는 그렇게 행복해 보인 채 끝을 낸다.

사랑을 찾던 오아시스 영화

Oasis는 삭막했던 삶에서 서로의 사랑으로 진짜 Oasis를 찾아낸 남자와 여자의 삶을 보여주며 끝을 낸다. 그렇게 끝을 열어둔 채 희망을 넌지시 건네준 Oasis, 공주의 웃음은 그래서 더욱 행복해 보이는 것 같다. Oasis이창동 감독은 세편의 영화를 만들어 오면서 점점 자신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것 같다. 장진 씨가 수다스럽게 착한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다고 말을 하고, 허진호 씨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반찬욱 씨가 사회에게 자꾸 시비를 거는 것처럼 이창동 씨는 또 자신 나름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건네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창동 씨의 이번 영화가 더욱 반갑다. 앞으로 더욱 나아가는 방향성을 쥔 채 영화를 끝내 놓았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이기에 숨 가쁜 사회에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다. 방향성, 그것은 희망을 가지고 끝났기 때문에 더욱 발전적이다. 이창동 감독이 세편의 영화를 만들어 온 그 과정처럼 말이다. 이제 우리 사랑을 알고 희망을 느꼈으니 공주처럼 환하게 한번 웃어보자. 지금 사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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