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마키나' 영화 리뷰 및 해석

'엑스 마키나' 영화 리뷰 및 해석
'엑스 마키나' 영화 리뷰 및 해석

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 감독인데요. 사실 누군지 잘 모르고 필모그래피를 보니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더군요. 대표작으로는 28일 후(각본), 28주 후(기획) 좀비물이 있었고 SF로는 선샤인(각본)과 2012년 새롭게 나온 저지 드레드(프로듀서, 각본)를 했네요. 우리나라로 치면 입봉이라고 하는데 첫 연출을 맡은 작품이 바로 엑스 마키나입니다. 우선 신기한 이름부터 해석해보아야 할 듯합니다. 엑스 마키나의 원래 이름은 라틴어로 Deus ex machina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뜻이며 문학 작품에서 결말을 짓거나 갈등을 풀기 위해 뜬금없는 사건을 일으키는 장치를 뜻하기도 하는데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막장 드라마와 비슷합니다. 서사의 구조의 논리성이나 일관성 보다는 갑자기 막 신과 같은 초월적인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개연성이 없이 갑자기 기적적으로 초월적인 힘을 가진 등장인물이 개입해 극의 긴박한 국면을 뒤집고 결말을 이끌어가는 극의 수법을 극작술의 명칭이었습니다. 깨알 지식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영화 줄거리

우선 엄청난 AI 에이바의 연기를 보여준 '알리시아 비칸데르' 북유럽에 있는 스웨덴 배우입니다. 키는 166cm 제가 딱 좋아하는 키네요. 출생 연도는 1988년도 궁합도 보지 않는다는 저와 4살 차이네요. 영화에서는 계속 민머리 로봇으로 나오기 때문에 실제 모습이 궁금해서 구글링을 해보았습니다. 서양과 동양의 미를 모두 겸비한 비주얼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비주얼의 여배우를 영화 내내 민둥산 머리로 등장시키다니 아쉽습니다. 우선 개인적인 아쉬움은 뒤로하고 캐릭터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인간보다 더 매혹적인 AI 로봇 '에이바(AVA)" 1세 무직입니다. 특별한 직업은 없고 그림을 좀 그릴 줄 압니다. 자신이 인조인간임을 잘 알고 있으며 역대 어떤 영화에서보다도 완벽한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터져 나올 때마다 영화에 몰입될 수밖에 없는 그런 대사들로 가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은 이 영화의 명대사는 에이바의 "당신이 만든 피조물에게 미움받는 기분이 어때요?"였습니다. 다음 주인공입니다. 중동 오일 재벌처럼 생긴 이 아저씨가 세계 최대의 검색 사이트 블루 북의 회장이자 천재 개발자 '네이든'입니다. 남자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자 다음 남자 주인공은 이 녀석이 바로 위에 소개한 블루 북의 평범한 프로그래머 '칼렙'입니다. 이 녀석 역시 XY 염색체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천재 개발자 '네이든'은 블루 북 사원들을 대상으로 대통령보다 만나기 힘든 자신과 일주일 동안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고 그 이벤트에 '칼렙'이 선정되어 헬기를 타고 네이든의 비밀 연구소로 향하게 됩니다. 빙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 산을 넘고 칼렙을 내려주고 헬기는 일주일 뒤에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비밀 연구소로 가기 위해서는 더 들어가야 합니다. 한참을 숲 속을 헤치고 걸으니 쥐라기 공원에나 나올 법한 연구소가 하나 보입니다. 뭔 연구소가 이렇게 외딴곳에 있는지. 천재 프로그래머 네이든의 똘끼를 엿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띵동~ 택배 왔습니다~ 택배 가방을 들고 온 칼렙은 네이든의 비밀 연구실 내부로 들어가자마자 인테리어에 놀랍니다. 분명 외부에서 봤을 때는 쥐라기 공원이었는데 자연과 어우러진 실내는 돈지랄의 대명사 아이언 맨의 스타크 타워를 보는 듯했습니다. 네이든과 칼렙의 첫 만남입니다. 드디어 베일에 싸인 세계 최초 AI 로봇 에이바 등장.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무식한 T-900 같은 로봇을 기대했던 칼렙. 뜻밖에 자신의 취향의 에이바가 등장하자 웃음이 저절로 터져 나옵니다. 칼렙은 7일 동안 7번의 세션을 통해 에이바가 진짜 인공지능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하는 척(?)을 하는지 튜링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네이든. 7일간 7번의 세션을 통해 에이바가 진짜 인간처럼 생각하는지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저는 이 영화는 충분히 기독교 어그로를 끌 수 있는 영화라고 직감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에이바를 대상으로 칼렙의 튜링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다소 신기한 물건을 보는 듯한 태도와 표정으로 에이바와 대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에이바와 칼렙의 대화를 소개하고 싶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그 대화에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네이든은 이 둘의 대화를 감시 카메라를 통해 모두 보고 듣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일간의 대화를 통해 에이바는 칼렙에게 꼬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그림도 보여주고 칼렙도 그려주고 예쁜 옷을 입은 모습도 보여주고 이곳에서 나가게 되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칼렙과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칼렙에게 대시를 합니다. 모태솔로인 칼렙은 뜻밖의 대시에 놀라 네이든을 찾아가 묻습니다. 연구소가 정전이 되어 카메라와 마이크가 모두 꺼진 틈을 타 에이바는 칼렙에게 말합니다. 칼렙은 혼란에 빠집니다. 정전사태가 끝나고 다시 전기가 들어옵니다. 네이든은 칼렙에게 묻습니다. 칼렙에게 네이든과 에이바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선택을 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인간 VS 로봇. 결국 칼렙은 네이든보다는 에이바의 말을 신뢰하기로 합니다. 그림은 영화에 등장하는 잭슨 폴락의 유작 No. 5라는 작품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싸게 팔린 그림입니다. 영화에서 네이든은 칼렙에게 이 그림을 보여주며 인간의 무의식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무의식이란 인간이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생각이며 만약 잭슨 폴락이 무질서하게 그려진 이 그림을 의식적으로 그리고자 했다면 점 하나 찍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무의식의 세계를 프로그램으로 코드화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를 듣고 칼렙은 한 가지 엉뚱한 생각이 자신의 머리를 스쳐갑니다. '이 테스트 설마 에이바가 아닌 나를 테스트하는 것은 아닐까?' '설마 나도 프로그램화된 로봇이 아닐까?'

영화 리뷰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스포하도록 하겠습니다. 엑스 마키나에 대한 제 뇌피셜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의 결말이 담겨 있으니 영화를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가장 인간 다운 것은 무엇인가?" 에이바의 튜링 테스트를 통해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 같았습니다. 엑스 마키나의 궁극적인 주제는 바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욕망이라고 해석이 됩니다. 역설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간인 칼렙과 네이든은 불완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AI 에이바는 욕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가장 진화된 AI는 질문에 얼마나 인간답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죄성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결국 에이바는 자신을 만든 주인을 죽이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연구소를 탈출합니다. 신의 마지막 창조물이었던 하와가 자신의 욕망에 이끌려 선악과를 따먹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려는 것.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가장 처절한 실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리뷰의 초반에 소개한 이 영화의 명대사를 다시 한번 적으면서 리뷰를 마칩니다.

시티 오브 갓 영화 감상 리뷰

시티 오브 갓 영화 감상 리뷰
시티 오브 갓 영화 감상 리뷰

영화잡지를 우연히 있다가 포스터가 인상적이어서, 그리고, 전 세계 영화팬이 격찬한 액션 스릴러, 다시는 보지 못할 최고의 걸작이라는 말에 혹해서 볼까 말까 고민하다가 보게 된 영화다. 어느 나라의 영화이고, 감독이 누군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정말 모험이었다. 이 모험은 대체로 실패였다. 집에 있다가 영화 본다고 해서 갑자기 나온 누나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영 화의 느낌은 가이 리치 감독의 락 스탁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와 비슷했다. 이야기 구성 능력이 탁월하닥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스내치보다는 락 스탁을 추천하고 싶은데, 맨 끝에 모든 이야기가 이어지게 보여주는 그 힘은 과히 대단하다.

영화 느낌

스릴러는 아니지만, 연극 라이어에서 각자에게 한 거짓말들이 모든 등장인물이 한 무대에 서면서 모든 것들이 연결되는 그 모습과도 일맥상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면 cgv에서 봤는데, 인디 상영관에서 볼 수 있었다. 브라질 영화로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감독의 작품으로 신의도 시라는 책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감독은 같은 브라질 사람이었지만, 중산층으로써 리우 데 자네이루의 빈민가의 모습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신의도 시라는 소설을 보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700페이지에 달하고 350명이 넘는 인물들을 압축해 응집해서 표현하는 이야기 전달력은 탁월한 것 같다. 과거와 현재를 절묘히 오가며, 한인 물이 초점을 두고 이야기하다가 다시 빠져서 다른 인물로 앞 장면의 바로 그 장면으로 드나드는 연출은 현란한 정도다. 만약에 메이렐레스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할리우드 배우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조금 더 재미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를 보며 아쉬웠던 점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었던 이유는 1. 브라질 영화라 캐릭터들의 이름들이 너무 낯설었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다시 등장하고 하는데, 그걸 캐치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2. 브라질 사람들의 모습이 각 캐릭터를 구분하기에 너무 힘들었다.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보면 다 비슷해 보인다고 하는 것처럼, 흑인들의 모습들이 다들 비슷비슷하게 보여서 누가 누군지 헷갈렸다. 3. 핸드 헬드로 찍어서 안 그래도 복잡한 이야기를 보는데 힘든 나를 어지럽게 했다. 그래서, 중간중간 조금 휴식?을 취하긴 했지만, 미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보였던 할리우드 입성 0 순의 감독이 몇 년 뒤 할리우드에서 작품을 만든다면 기대해 볼 만한 것 같다. 같은 지구 상에 그런 신의 도시 같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영화는 폭력적이고 잔인하다) 충격적이다. 아이들은 7~8세에 어른들의 폭력과 살인에 희생자가 되고, 다시 그들은 총을 쥐고 살인과 마약을 일삼는다. 아무런 감정 없이 살인을 하고 죽고 죽이는 그 관계가 되풀이되고 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신의 도시가 아니라, 신이 버린 도시인 것이다. 그런 잔인한 장면을 빠른 템포로 때론 경쾌한 음악으로 풀어나가는 모습이 거슬릴지도 모르겠다.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해석, 분노로 성장하는 소녀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해석, 분노로 성장하는 소녀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해석, 분노로 성장하는 소녀

제목부터가 자극적인 작품, 포스터부터 강인한 인상을 품기는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 최근 이래저래 영화 리뷰가 늦어지고 있는데 단순 게으름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 리뷰어라고 가끔씩 넷플릭스에 들려 신작이 뭐가 올라오는지 구경하는게 일상인데 이 작품은 올라오자마자 보게되었다. 물론 리뷰는 4일이나 지나서 하고있지만. 나는 생각보다 사회적인 이슈를 좋아하고 한마디 하는걸 좋아한다. 깊이는 없지만 툭툭 생각을 내려놓는걸 선호하는데 일단 영화블로그여서 사회적 이슈로 싸우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요즘 사람들은 원리나 논점이 흐릿한채로 그저 상대방을 어떻게 공격하느냐가 포인트라 특히 더 그렇다. 아무튼 이 작품은 생각보다는 사회를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김혜윤 배우에게 더 몰입된 작품이라고 보인다. 무엇이 그녀를 불도저에 타서 문제를 만든건지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를 리뷰해본다.

줄거리-몸집을 키우는 복어

오늘도 경찰서를 들락날락하며 무서울것 없이 거침없는 행동을 하는 구혜영. 팔에 문신까지 새기고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까버리는 성격이지만 동생 혜적에게는 한없이 다정하다. 하지만 경마도박을 하는 아빠 본진으로 인해 가게 한 편 쪽방에서 살며 그저 하루하루 내놓은 아이처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 본진이 실종되고 그가 폭력사건에 휘말렸다는 형사의 전화를 받는다. 평생 폭력으로 살아온 혜영은 별일 아니라는듯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본진은 여전히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본진이 병원에 있음을 듣게되고 그가 사람을 치고 본인도 사고에 휘말려 뇌사상태에 빠진것을 본다. 세상에 두려울것 없던 혜영도 동생 혜적과 세상에 둘만 남아야함을 느끼게되고 두려움이 앞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녀는 용기를내어 사건의 실마리를 잡게되고 한발한발 사건의 실체에 다가선다. 그리고 분노에 찬 그녀는 불도저를 훔쳐 운전하기 시작하는데.

결말 및 해석,명대사

알고보니 본진은 과거에 일하던 회장에게 가게를 빌렸고 순진하게 오래 빌려준다는 말에 건물을 증축했던것. 그리고 회장은 증축한 건물에서 본진을 쫓아내려하고 이에 분노한 본진이 그를 찾아가면서 일련의 사건들이 발생했던것이다. 결국 혜영은 회장에게 분노했으나 애써 찾은 회장이 갑질하는 녹음파일마저 사라지게된다. 회장은 국회의원에 도전하고 혜영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고 결국 불도저를 몰고 뺏길 건물을 부수고 회장의 집에 찾아가 불도저로 집을 밀어버리려한다. 하지만 결국 출동한 경찰에게 총을맞고 감옥에 간다. 그로부터 얼마 뒤 회장의 갑질이 밝혀지고 혜영은 모범수로 출소한다. 그리고 동생 혜적과 함께 살며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아버지의 사망이 결국 상대방측의 잘못으로 밝혀지며 보험금이 들어오며 영화는 결말을 맺는다. 영화 소개에도 그렇고 맥락도 어느정도는 사회 고발을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전체적인 대조를 통해서 결국 혜영의 성장을 보여주는 작품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영화는 대조를 참 여러곳에서 사용했다. 우선 가장먼저 두드러지게 보이는 혜영의 팔을 보면 더 쉽게 다가온다. 우리가 살쪘는지 확인하면서 반대손으로 손목이 잡히는지 보는 경우가 있는데 누가봐도 한손에 다 들어올만큼 가녀린 팔을 가진 그녀의 팔에는 온갖 문신이 되어있다. 여려보이는 팔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강렬한 문신은 그녀의 힘든 삶과 대비되어 오히려 그녀를 더욱 초라하게 보이게한다.

그럼 그냥 죽어요?

그리고 제목으로 쓰인것처럼 불도저와 소녀도 하나의 대조이다. 가녀린 그녀는 불도저를 타며 연약한 자신을 포장하며 강인하게 보이게된다. 어찌보면 발악에 가까운 그녀의 몸짓이지만 결국은 그 발악이 세상을 조금은 바꾸어 놓지 않았을까. 그리고 동생 혜적은 거칠어 보이는 혜영의 반전을 보여준다. 욕과 주먹이 항상 먼저 나가는 그녀이지만 혜적에게는 한없이 자애롭고 사랑을 나누어준다. 그러면서 거침없이 기름을 붓고 불을 붙이려하거나 머리를 때리고 간 형사에게 똑같이 돌려주는 모습들이 대조되며 그녀의 연약함과 동시에 강인해보이려 하는 모습들이 대조되어 영화를 더욱 극적으로 비춰준다. 그리고 이 작품이 왜 그녀의 성장영화라고 보냐면 그녀는 한없이 거칠고 무서울것없는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아버지의 뇌사부터 진행된 세상의 풍파를 헤쳐나가기에는 너무나 여리다. 마지막 불도저를 몰기 전 혜영은 동생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막다가 심한 구타를 당한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를 깨달은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느끼는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인 모순을 자신만의 거친 무언가로 깨부술 수 없다는것을 느낀것이다.

그러고 사는거야 다. 조금씩 참으면서 자기 분수에 맞게

보통의 시니컬한 영화였으면 혜영은 집으로 돌아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않고 우울하게 끝났을것이고 통쾌한 영화였으면 그 자리에서 모두에게 속 시원히 복수하고 떠났을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혜영의 성장을 비추기는 하지만 불도저를 몰고 가게를 부수고 집을 부수려하는 모습을 담아내며 온전한 성장이 아닌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깨달음만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오며 거칠기만한 그녀를 응원하는 포인트가 된다. 단순히 사회고발적인 작품이였으면 리뷰하기도 싫을텐데 기쁘게도 적당한 선의 성장과 적절한 결말을 보여주며 다양한 즐거움을 모두 잡은듯하다. 올라온지는 며칠 지났지만 여전히 다양한 해석과 영화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감정과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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