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영화 리뷰 / 해석

곡성 영화 리뷰 / 해석
곡성 영화 리뷰 / 해석

밤 12시 25분 영화를 보고 집에 오자마자 최대한 생생한 기억을 살려 리뷰를 남깁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냥 공포, 스릴러, 호러, 오컬트 영화 정도이고 감독이 이런저런 장치를 많이 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영화는 뼛속까지 잘 만든 기독교 영화구나'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이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100% 기독교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검색을 통해 이 영화의 시나리오와 연출한 나홍진 감독의 인터뷰 내용도 보았습니다. 역시 나홍진 감독은 기독교인이었고 그가 느낀 기독교적 세계관을 곡성을 통해 잘 풀어냈습니다. 곡성 영화에 대한 다른 리뷰들도 읽어 보았는데 확실히 기독교인이 아니거나 기독교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수호신 VS 악마' 정도의 해석에서 멈추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부분 영화를 보신 분들께서 이 글을 볼 것이라고 가정하고 글을 써 내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저 역시 나홍진 감독이 연출했던 방식으로 대립 구도로 리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독교 세계관 VS 합리적인 유물론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부분은 '오컬트 VS 현대문명'의 괴리감입니다. 영화의 배경은 현재입니다. 다들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시골이긴 하지만 경찰이라는 안전보호 시스템이 있는 사회입니다. 피의자의 몸에서 독버섯이 다량 검출이 되었다는 나름 과학 수사를 하고 방송과 신문 등 매스컴도 등장하며 살인사건을 해결해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또, 큰 종합병원도 등장하고 현대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것처럼도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주인공 종구(곽도원)는 합리적인 현대문명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점점 '영'적인 세계의 문제로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주인공 종구 역시 영화 초반에는 지극히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경찰 동료가 괴소문을 말해도 현혹되지 않고 경찰의 과학수사 결과인 독버섯을 믿었고, 딸이 아팠을 때 아내가 약을 사 왔음에도 불구하고 더 합리적인 병원에 데려가라고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 이미 기독교 세계관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합리적인 유물론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합리적이라는 현대 문명도 수많은 가설로 시작되어 조금씩 진실이라는 것에 도달하는 것이겠죠.

보지 않고 믿는 것 VS 직접 눈으로 보고 믿는 것

위에서 이야기한 기독교 세계관이 보지 않고 믿는 것이라면 합리적인 세계관은 직접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겠죠. 계산을 해보고 통계를 보고 실제로 눈으로 보고 듣고 확인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고 믿는 것을 '믿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있다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단어는 '의심'이겠지요. 나홍진 감독은 2시간 30분 영화 내내 애매모호한 연출로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일본인'을 믿겠어? 아니면 '일광(황정민)'을 믿겠어? 아니면 '무명(천우희)'을 믿겠어? 저 역시 계속 바뀌었습니다. 일본인을 믿었다, 무명을 믿었다, 일광을 믿었다가를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영화의 진행을 보고 알 수밖에 없으니까요. 또 수 차례 등장인물들을 의심했습니다. 일광과 무명이 종구의 집 앞에서 만났을 때 일광이 코피를 쏟으며 구토를 합니다. 아마 이때 눈치를 채신 분들도 있을 듯합니다. 귀신을 만나서 영적인 힘에 눌려 코피와 구토를 하는 것 치고는 그 피와 토사물의 양이 너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아, 무명이 그리스도의 역할이고 '일광'이 악마일 수 있겠다는 의심을 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경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4장 37~39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마지막 무명과 종구의 대화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종구는 '내 딸이(또는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라는 식으로 묻고 무명은 '딸의 아비가 의심을 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닭이 세 번 울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데 결국 돌아갑니다. 결국 영화는 종구가 고통받는 이유는 '의심'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영화를 통해 기독교의 맹목적인 믿음을 옹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맹목적인 믿음을 디스 하는 것인지 또 헷갈리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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